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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COLUMN201603004 작성일자: 2016-03-20 조회수: 684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빌 2:5)
이 말씀은 사도 바울께서 1차 로마 감옥에 갇혔있을때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설교 편지에서 나옵니다. 
빌립보 교회는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로 루디아 가정에서 시작되어 귀신 들렸던 여인,감옥의 간수 가정등이 합류 한뒤에 에바브로디도 목사님이 사역을 하던 곳입니다. 
이 편지가 쓰였을때는 바울께서 감옥에 있을때로 교회가 성장하여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귀한 두분의 여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안에서 선의의 경쟁(?)심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면서 바울께 선교 헌금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선교 헌금을 갖고 로마 감옥에 까지 면회를 온 에바브로디도 목사님께로 부터 이 소식을 들은 바울께서 선의의 경쟁이라는 것은  "선"의 탈을 쓴 교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빌립보서를 썻으며, 이 교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위해 겸손한 예수님의 을 소개하고 묵상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마음"이 키워드입니다.
마음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태도,추구,애씀..."등으로 번역도 가능란대, 한 마디로 예수님의  가치관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품성을 나타내는 말이 너무나 많고 이 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의 품격과 고상함과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들입니다.
예를 들어 " 자비,희생,사랑,겸손,순종,온유,긍휼,치유,용서......." 등으로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을 보면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를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삶가운데 위와 같은 열매가 마음에 품어져서 있어서 이것들이 행함으로 외적으로 표현되고 나타나는 것을 보아야 비로소 우리는 신앙인이다,예수님의 사람이다 라는 증거를 갖게 됩니다.
사실 위와 같은 단어는 비신앙인도 일반 계시로 알려진바 이런 것들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도덕과 양심으로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의 행함이 아니라 말로만 전도한다면 다른 종교나 선하게 사는 사람과 우리 기독교인의 차별이 없어지므로, 기독교에만의 또 다른  "도"가 없다는 기독교에 대한 오해만 쌓이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써 무심코 쓰는 말중에 "예수님을 자기의 성격 대로 믿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 이는  "하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고 죄인은 사랑하신다"말과 함께  사탄으로 부터온 것으로 성도들에게는 거룩에 대한 감수성을 무디게하는 마취제와 같은 말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적이 한번도 없을 뿐 아니라, 인자 (헤세드)의 이슬 맺힌 눈으로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며,  끝까지 죄를 고집하는 죄인을 위해서는 사탄을 위해 예비한 불못에 그들과 함께 들어갈수 밖에 없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성경의 위인들 중에서 자기의 성격대로 믿던자들은 성격(개성과 지존감)이 낮아지고 깨어져서 마침내 완전히 죽을때까지 엄청난 연단과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 후에야 하나님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한 사람의 마음이라하더라도 - ( 설령 그 추구하는 바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더라도) - 하나님과의 동역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일을 성취한후에는 이 일은 내가 이루었다는 자기의 의가 충만하여 결국은 교만하게 되어  패망과 사망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자기의 성격대로 믿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주안에서 물렁 물렁해져서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된 몇분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지금은 죽어 천국에 영광중에 계시고 후대인 우리들에게 많은 믿음의 본이 되고 있지만, 그 분들의 인생의 여정을 성실히 공부하여 그 분들의 실수는 우리가 반복하지 않고 그 분들의 장점은 우리가 교훈을 받아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1. 모세  의 경우를 보면, 자기의 성격대로 믿다가 40세에 살인자가 되고, 80세까지 지명수배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인생의 광야)에서 양치는 목동 (이집트인에게는 냄새나는 천한직종)으로 살면서 히브리 말을 더듬을 정도로 부서졌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이제야 자기의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게되었고, 이제는 변하여 자기를 죽일 권한이 있는바로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그의 왕궁에 나아가 담판을 하고,출애굽 후에는  광야의 고생길에서 누나와 형의 반역에도 온유하게 중보 기도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내고, 사촌과 족장인 고라와 다단의 종교와 정치적 쿠데타의 도모에도 심판을 주님께 맡기게 되고, 므리바에서 반석에 명령하지 않고 혈기를 부리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에 못들어가는 선고을 받았음에도 하나님께 끝까지 상소하지 않고 몇번 간청만 하는 정도로 온유하게 변했습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지구상의 가나안보다 좋은 영적 가나안에 불러 올리셔서 천국 보좌의 곁에 두시다가 변화산에 임시 파송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인생은 자기 마음(성격)대로 믿는 시대와 주님의 마음으로 믿는 시대로 나누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격 대로 예수님 믿는다는 말은 대부분 성도들의 분냄과 혈기, 조급함을 합리화 하기 위해 쓰이는 말인데, 사실 분을 잘내는 것은 장로의 자격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디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이제 성격대로 믿는 것과 예수님의 마음으로 믿는 것의 차이를 대강 아셨습니다.

2. 베드로 사도의 경우를 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뵌 것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때인 예루살렘에서의 일입니다.
그 후에 가버나움에 돌아와서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을때,밤새 물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했으나 주님의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진즉 그물이 찢어지도록 집히는 기적을 보고는 주님께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제자의 길로 들어섭니다.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제자의 수업을 받는 동안에는 맞든 틀리든 상관없이 항상 대표적 위치에서 발언도하고 행동도 합니다. 
거의 제자 교육이 끝날 무렵에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주님께 신앙 고백한 사건 말고는별로 칭찬을 받은 적이 없지만 그의 튀고자 하는 성격은 고쳐지지않습니다. 
위 신앙 고백이 사실은 베드로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것이라고 주님께서 진리를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의 마음에서 분이 났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말로  마음이 상해 있을떼 주님께서 앞으로 당할 십지가의 수난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게 되는데,  베드로는 대뜸 주님께 항변( 원어로는 책망) 하면서 대들었습니다.

변화산 사건때도 산을 내려오시면서 3명의 제자들에게 부활하실때까지 아무에게도 이 일에 대하여 말을 하지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산하여 보니 남아있던 나머지 제자 9명은 귀신 하나를 못 쫒아내고 쩔쩔 매고 있어서 주님으로 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가지일 후에 제자중에 누가 크냐하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3명과 9명의 제자들의 다툼인 것 같습니다. 
즉, 베드로는 항상 내가 최고여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같습니다.
이런 성품은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께서 모진 고문을 당하실때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면서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곳에 가지를 말던지......

이런 베드로가 한번더 변화되는 사건이 오순절의 성령 세례 사건인데 이 뒤로는 베드로 사도께서 뀌어도 너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불필요할 정도로 잘못된  겸손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상과하, 동과서, 남과북,좌와우로 요철하는 마음은 주예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진리만을 죽기까지 고집하시는 마음입니다.
아무튼 베드로의 지나친 겸손으로 초대 교회는 약간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 중 하나가 사도행전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는 제1대 총회장 자리를 회심 한지 얼마 안되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양보합니다. 
야고보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현장에서 회심한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단독으로 만나주셔서 복음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 행1장과 고전15장으로 확인되는데 , 그렇댜면 신앙의 연륜이 베드로에는 훨씬 못미칩니다.

물론 당시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과도기라는 생각 한다면  약간 율법적 냄새가 나는 야고보가 총회장으로 적임자라는 인간적인 생각은 할수 있으나, 나중에 야고보가 바울에게 준 사도와 장로의 규례나 이방인과 교제를 감시하게 하는 사건들은 비복음적으로 나중에 모두 폐지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초대 교회 지도자는 사도중에서도 베드로가 적임 자였으나 그는 주님을 부인 한 사건과 성령 세례를 경험 한후 지나치게 겸손해 졌다는 것입니다.

또 한사건은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 집안을  전도하고 이일로 말미암아 총회의 청문회가 호출되었을때 생깁니다.
이 총회에서 이방인에 대한 전도와 교제(식사)에 대하여 소신있고 용기 있게 변론하지 못하고 맙니다.
이때 베드로는 너무나 겸손하여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하지 못한 변론을 하였고, 총회는 합당한 사도와 장로의 규례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각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하여 우왕 좌왕 하게 되었고 바나바와 바울이 시무하던 안디옥 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후에  안디옥 교회는 기독교인의 할례문제로 시끄러워지자 총회에 상소하는 사건이 발생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총회 논쟁에 결정적으로 이방인의 전도와 할례 문제를 끝내는 변론을 한 분이 베드로 사도인데 그 때 논증으로 고넬료 집안의 문제를 제시합니다.
처음에 끝낼수 있는 문제를 베드로의 나약함 때문에 끝내지 못한 것입니다.
바쁜 바울의 전도 일정도 늦춰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입니다.

이 일후에도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여 이방인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총회장인 야고보가 보낸 감사들이 들어 닥치자 마치 식사를 함께 하지 않은 것 같이 그 자리를 뜨므로 바나바도 같은 행동을하여 시험에 들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의 지나친 겸손은 진리를 위한 논쟁 조차도 회피합니다.
여기 까지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라 "베드로의 마음"이었으며, 변화 되었지만 반 정도는 자기의 성품대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는 네로로 부터 시작된 불과 같은 기독교의 핍박을 거치면서 쓴 2개의 셜교문 서신인 베드로 전후서에 볼때  엄청나게 학문과 지식과 간증과 권면과 겸손이 나타나고 영적 계시가 넘쳐 납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순교할때 예수님과의 차별을 강조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의 잔을 마셨다는 믿을 만한 전승이 있지 않습니까? 
자. 이제 묻습니다. 과연 성격 대로 믿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까?

3. 바울의 경우를 봅니다.
사도 바을은 모든 일에 열정이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완벽주의자" 였습니다.
회심전에 그는 그 누구 보다도 유대교에 열심임을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 라고 기록됐습니다.
이런 분은 절대로 학문과 논리로 전도가 안됩니다. 
스데반 (같은 동문 이라는 전승)이 죽기 까지 전도 했는데, 역 효과가 와서 오히려 타 지방인 다메섹까지 출장을 가서 기독교인 핍박에 앞장을 섭니다.
이런 잘못된 여호와의 신앙인인 사도 바울과 같은 부류의 사람은 은 예수님께서 직접 손봐서 전도를 해야 믿는 자입니다.
마치 오늘날 유대교나 이슬람교인은 예수님께서 꿈이나 환상으로 직접 전도하셔야 효과적이고 순교자적인 증인의 기독교인으로 회심하는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

참고로, 우리 성도들의 실력과 영력으로 인문학자,철학자,과학자, 소위 저명인사들을 논리적으로 전도 한다는 생각은 접어야 합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로 주님께 맡기면서 섬겨야 전도가 될까 말까합니다. 
안되는 분들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논리로 이겨봐야 우리의 속은 후련할지 몰라도 그 분들은 돌아서서 하나님의 성호를 욕되게 할수 있습니다.
논쟁과 변론에서 진 것으로 화가 나서 오히려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싸잡아 비웃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 십계명중 제 3계명을 범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못 참으시는 것이 서너거지가 있는데,영광과 성호에 흠집을 내면 이방인 이라 하더라도 비로 죽이시는 경우가 성경에 많습니다.
전도하다가  오히려 사탄이 그 영혼을 취할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지혜의 전도가 필요합니다. 
"예수,천당" 외치는 전도 방법은 큰 영력을 가진 은사자만이 가능합니다.
최권능 목사님 정도의 은사도 없이 길거리 예수 천당 전도는 고려를 해봐야합니다.

회심후에 바울은 바나바와 그의 조카인 요한(마가)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 전도 여행중에 마가가 중도하차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므로 바울과 바나바에게 큰 실망감을 줬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전도 여행을 계획하는 중에 바울이 마가를 제외 시키자고 제안한 일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고 끝내 둘은 결별합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도 하고 안디옥 교회에 목회지로 청빙을 한 사역의 은인인데도 불구하고 이 한가지일로 영원히 갈라서서, 그 뒤로 두분이 함께한 사역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없습니다.
아마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고향인 구브로 전도를 마치고 돌아가신 것 같고,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은 이방 전도차 예루살렘을 따났고 교회에는 핍박은 더욱 심해져서 거의 문을 닫은 상태라서 마가가  예루살렘에 돌아가지 못하고 바울및 베드로와 함께 동역을 한 것 같습니다

바울의 성격을 볼수있는 두번째 사건은 고후서 10-12장에 있는 자기 변호입니다.
굉장히 화가난  어조로 사도직을 변호하다가 천국 여행 간증까지 동원하는 것입니다.
사도직의 변론은 목숨 보다 귀한 것은 사실입니다. 
만일 바울 사도직이 부인 된다면 그가 세운 모든 교회는 이단이 되고 그의 서신은 외경과 위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변론 과정의 사도 바울은 고전13장의 사랑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위와 같이 천하의 바울 사도도 비록 회심은 했지만 자기의 성격 대로 믿는 신앙을 봤습니다.

이제 바울 사도의 노년의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보겠습니다.
노년의 바울께서 2차 감옥에 투옥되어 사형을 기다리면서 죽음을 예견하고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이 바로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하면서 생겼던 마가 배제 사건입니다.
사실 마가는 이미 바울이 1차 로마 감옥에 투옥 됐을때 화해가 되어 함께 로마에 있으면서  바울 사도의 수종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후에 사도 바울은 1차 투옥에서 풀려나자 마가,디모데,디도등을 데리고 전도 여행을 하면서 디도는 그레데 섬 목회자로 앉혀놓고, 디모데는 마가와 함께 에베소에 목회자로 않혀 놓았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마케도니아의 교회를 순회 할때에, 로마에서는 네로왕이 로마시를 방화하고는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 민심을 수습하기위해 로마시의 방화범으로 기독교인을 지목하였고, 이에 따라 로마 병사들이 로마 교인들을 죽일뿐만 아니라, 로마령 내의 모든 기독교 지도지들을 잡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마케도니아에서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 되어 옷도 가죽 성경책도 챙기지 못하고, 다시 로마로 압송되어 정치범으로 투옥되고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 사형을 앞두고 감옥에서 누가의 도움을 받아 유언장으로 쓴 글이 디모데후서 인데, 이 글에서 바울께서는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이 둘 있는데, 디모데와 마가라고 하시면서 로마로 빨리 오라고 당부를 하십니다.
디모데는 목사니까 다시 한번 안수를 하여 바울 사도의 영성을 전수 시키고자 함인데, 마가에 대하여는 다시 보고 싶은 이유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루어 보건대, 그냥 보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되면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하고 서운 하게 한 일만 남게 됩니다.
노 사도 바울께서도 이미 믿음 안에서 마가와 화해하고 영의 자식이 삼았다 하더라도 ,2차 전도 여행을 계획 할때  젊은 마가를 포용하지 못하고 바나바와 싸운 것이 끝까지 바울 사도의 마음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바울 사도 께서도 젊었을때 성격대로 믿다가 나중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 된것이 보이죠?

시간 상 이정도만 살펴봅니다.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도 성격 대로 믿지말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빨리 변화되고 믿어서 
성령님의 열매를 맺어여 하지않겠습니까?

방법은?              말씀과 기도와 순종 밖에없습니다.
내가 변해야 되는 것이지, 내말이나 내 행동이 변하기를 바라면 안됩니다.
내마음이 변하면 말과 행동은 변하여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즉, 말씀과기도와순종의 삶이 마음에 INPUT 되면 변화돤 말과 행동이 마음에서 OUTPUT 됩니다. 
자판기 원리입니다.
신앙의 완성에는 왕도(지름길)가 없습니다. 
있다면 당장 천국에 가는 것이 신앙의 종착역이고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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